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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와의 만남 그리고 이별, 반려달팽이가 되기까지

by 너나달퐁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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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첫 달팽이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같이 지내며 애완 달팽이에서 함께하는 반려 달팽이로 마음이 변화하는 순간 그 행복했던 기억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달팽이와의 만남 

늘 그렇듯, 건강한 식사를 하기 위해 마트에서 로메인*을 구매하였다.  배송을 받고 먹을 만큼 씻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하였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뒤, 그다음 먹을 양을 준비하는데 싱크대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돌멩이 인가? 생각하는데 자세히 보니 달팽이였다. 달팽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만 해도 비가 오면 담장에서 많이 봤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본 기억이 없다. 내가 구매한 야채에서 달팽이가 나오다니 신기할 따름.  더 신기한 건, 냉장고에서 일주일이나 버텼다는 것.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냉장고가 균일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왠지 달팽이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내가 먹으려고 구매한 로메인은 달팽이가 가종 좋아하는 먹이였던 것. 그래서 냉장고에서 먹고 자고 똥 싸고 아주 잘 지낸 게 아닌가 싶다. 달팽이를 발견하긴 했는데 이 생명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삭막한 도시로 어디 풀어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근처 산책로에 이 달팽이를 풀어주었다면 지금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주인을 선택한다고들 많이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데 나는 달팽이에게 선택을 받게 되었다. 달팽이와 지냈던 행복했던 기억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로메인은 상추의 일종으로 로마인들이 대중적으로 즐겨 먹던 상추라 하여 '로메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만남뒤의 헤어짐

달팽이가 야생에서 잘 성장할 확률은 엄청나게 낮다는 걸 달팽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야생에서의 환경은 느린 달팽이에게는 혹독하기 때문에 생이 짧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달팽이는 한번 교미를 하게 되면 두 달팽이 모두 알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달팽이는 자웅동체이기 때문이다. 간혹 알부터, 어린이 때부터 키워온 아이들이 알을 낳을 때가 있는데 이 알은 무정란이다. 한알 또는 여러 알을 낳는데 유정란일 때보다 알의 개수는 작다. 쌀알만 한 알을 한 뭉탱이로 낳게 되고 그들은 힘이 닿을 때까지 몇 번이고 알을 낳으며 심할 때는 알을 낳다가 죽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팽이에게도 단백질과 칼슘을 잘 챙겨주어야 한다.) 그 이유는 생태계의 최하위에 위치해 있어 포식자들에게서 본인들을 대대손손 번식하려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 온 달팽이는 아주 운이 좋은 것 같다. 야생에서 자랐다면 분명 이 험한 세상에서 성체가 되지 못했을테니. 2021년 05월 11일부터 2022년 04월 26일까지 351일 동안 같이 지내줘서 너무 고맙고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일 년 조금 부족한 시간 동안 좋아하는 신선한 야채들을 매일 챙겨주었고, 달팽이에게 꼭 필요한 칼슘과 단백질을 꾸준히 챙겨주었다. 가끔 과일을 같이 먹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달팽이들과 함께하며 처음 만났던 달팽이를 종종 생각하곤 한다. 너무 그립다.

 

반려달팽이가 되기까지 

처음 달팽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달팽이에게 난 돈을 많이 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강아지 고양이도 아니고 엄지손톱만 한 달팽이를 보고 있자니 작은 집과 내가 먹는 야채를 조금 나눠주며 지낼 생각이었다. 어디 풀어줄 곳도 마땅치 않고 먹는 야채 조금 나눠주면 되니 같이 지내는 데에는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달팽이에게 집을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뚜껑 없는 작은 플라스틱 통이 눈에 띄었다. 마트에서 파는 두부케이스였다. 같이 지낸 첫날밤. 그는 작은 케이스에서 잘 지냈다. 문제는 이튿날 발생하였다. 뚜껑이 없는 케이스에서 달팽이가 탈출한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뚜껑이 없었으니 도망가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었다. 엄지손톱만 한 달팽이를 찾으려고 아침 출근 준비도 못한 채 한참을 찾았는데 달팽이를 발견한 곳은.. 부엌 싱크대 속 배수통이었다. 부엌에서 제일 습한 곳을 찾아간 것이었다. 순간 달팽이의 습성이 생각났다.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달팽이인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달팽이를 볼 때는 항상 비 오는 날이었는데, 아차 싶었다. 그 뒤로 뚜껑을 덮어놓았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분무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어느새 이 작은 달팽이가 조금씩 크는 게 눈에 보였고, 밤새 야채는 맛있게 먹었는지, 똥은 잘 쌌는지 체크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처음 애완용이라는 생각으로 키우기 시작했던 달팽이가 어느새 가족이 된 것 같았고 어딜 가도 이 아이가 맛있게 먹겠는데? 이 물건을 집에 넣어주면 재밌게 놀겠는데? 생각하며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달팽이를 함께하는 생명체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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